송말 서대승 "자평삼명통변연원"
日干旺甚無依, 若不爲僧即道
일간왕심무의, 약불위즉도
일간이 매우 왕한데 의지할 곳이 없으면 만약 승려가 되지 않으면 도사가 된다.
여기서 승려는 불교, 도사는 도교이다.
수당시대는 도교와 불교의 나라이다. 그리고 그 여파가 송대까지 이어진다. 많은 지식인은 불교나 도교를 공부하였고 대접을 받던 시기이다. 그러나 송나라 말기의 명리서적에서 승려와 도사를 낮게 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수,당시대 무종(841~847)년 불교를 탄압하는 사건 "제3 법난"이 발생하는데 도교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불교는 불교인을 사회로 환속시키고 사찰에 노비를 해방하고, 재산을 환속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받는다. 그 이 후 탄압은 약 3~4년만에 끝났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불교와 도교를 따르고 있었으며, 송대에 들면서까지도 불교와 도교는 민간에 주를 이루고 있었다.
송대는 유교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정치 참여가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이유는 수나라 문제부터 시작된 과거제도에서 시작된다. 과거제도는 호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왕권강화의 수단이였다. 불교와 도교는 수당시대 발전하지만 정치참여인 참정에 기회라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나 도교의 지식 공부보다 과거제도를 통한 출세의 길을 선호하면서 불교와 도교는 완전한 쇠퇴의 길로 접어 든다.
명리서를 쓴다는 것은 공부를 했다는 소리이다. 공부는 관직에 나가기 위함이다. 따라서 유교를 공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상적으로 도교와 불교가 혼합했다고 해도 유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유학은 오행을 적극 수용하지만, 오성술은 배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기조는 청대에 확실히 드러남이 엿보인다.
송대 말 지식인은 유학을 공부했고 실천덕목인 인간관계성을 가지고 속세를 버린 승려나 도사를 비하수준까지 갔다고 보여진다.
마철이장. 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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